2009. 10. 7.

포에니 전쟁

Punic(poeni) War 또는 Carthaginian War

 로마와 카르타고(Carthage,현재의 튀니지)가 지중해 지배권을 두고 다툰 세번에 걸친 전쟁.

포에니는 '페니키아인 의~(Poenicus)'에서 왔다. 페니키아인이 814년경 북아프리카에 세운 식민지가 바로 도시국가 카르타고였다.

 

제1차 포에니 전쟁(First Punic War, BC 264 ~ 241)

  로마와 카르타고가 코르시카(Corsica)와 시칠리아(Sicilia) 두 섬을 두고 벌인 전쟁이다. 로마는 지중해의 이권을 얻으려했으며 전통적인 해운국이자 서지중해의 무역을 장악한 카르타고와 결국 충돌하게 된다.

 

BC 264년 메사나와 시라쿠사 간 분쟁에 끼어들어 카르타고 시칠리아 섬에 주둔. 로마가 메시나를 공격해 카르타고군 철수.
BC 260년 로마 함대가 아크라가스등 시칠리아 섬 일부 장악하고 코르시카 섬으로 가는 길을 뚫어 코르시카에서 카르타고를 격퇴시킨다.

BC 256년 로마는 아프리카 대륙에 발판을 마련하고 협상에서 가혹한 협상조건을 내걸음.
BC 255년 기병대와 코끼리를 중심으로 새 부대를 조직한 카르타고가 로마 군대를 몰아냈다.
BC 254년 ~ 241년까지 소강상태
BC 241년 아이가테스해전. 200대의 전함으로 무장한 로마군은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고 시칠리아 섬에 있던 카르타고 요새를 파괴.
BC 240년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와 아이올리아(리파리) 제도를 로마에 넘겨주고 배상금을 내는 것에 합의하고 항복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Second Punic War,BC 218 ~ 201)

  로마는 1차 포에니전의 승리 이 후 패자인 카르타고에 대해 가혹하게 대했으며 합의보다 많은 전쟁 배상금을 강요했다. 또한 코르시카와 그 남쪽의 사르데냐(Sardegna)섬을 빼앗기까지 한다. 카르타고는 하밀카르 바르카와 아들 한니발, 사위 하스드루발의 지휘하에 히스파니아(스페인)에 새로운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다.

 

BC 219년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 동해안에 있던 사군툼(Saguntum,현재 지명 사쿤토)을 함락시킨다. 로마는 카르타고에 철수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로마는 해상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니발은 이에 이베리아 반도((히스파니아~갈리아)를 통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침공을 하게 된다. 로마는 한니발의 공격을 막고 있는 와중에도 식량원중 하나인 사르데냐와 시칠리아에서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BC 218년 보병 2만 명, 기병 6,000명을 이끌고 포 강가에 있는 평야에 도착. 로마군이 방어에 나섰으나 격퇴되었다.

BC 217년 한니발은 갈리아인들의 증원을 받아 남쪽으로 이동한다. 로마를 공격하는 대신 시민들의 반란을 원해 주변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BC 216년 칸나이(칸나에)전투에서 로마군을 포위 섬멸한다. 로마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연 방어 전략으로 일관했으며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BC 211년 로마가 카푸아 시를 되찾는다.

BC 207년 리구리아와 갈리아의 군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하스드루발이 알프스를 넘어 한니발과 합류했다. 하지만 하스드루발은 메타우로스 강에서 남부 로마군 사령관 가이우스 네로의 로마군에 패한다.

BC 206년 로마 장군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대 스키피오)가 일리파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스페인에서 카르타고군을 몰아낸다.

BC 204년 스키피오가 아프리카로 원정.

BC 203년 한니발 본국으로 소환된다.

BC 202년 자마 전투. 한니발과 스키피오로 대표되는 전투로 카르타고를 지원했던 강력한 누미디아 기병이 로마쪽으로 돌아섰다.

 

결국 스키피오가 승리했다.지중해의 섬과 히스파니아, 해군을 로마에 양도했고 전쟁 배상금을 냈다.

 

제3차 포에니 전쟁(Third  Punic War,BC 149 ∼146)

 1,2차 전쟁으로 활력을 잃은 카르타고지만 상업적으로는 영향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BC 150년 누미디아가 카르타고를 침공하자 무력으로 이에 대응했다. 하지만 로마와의 조약을 어긴것이 되어 로마군의 간섭을 받게된다.
로마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던 카르타고였으나 상업적 터전인 바다에서 먼 내륙으로 거주지를 옮기려하자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전쟁은 2년간 지속되었다.
BC 147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소 스키피오)가 결국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냈다. 2년에 걸친 포위공격에 도시인구 25만 여명에서 단 5만 여명만이 살아남았고 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렸다. 도시는 철저히 파괴시키고 소금을 뿌렸다.

 

카르타고는 역사상에서 사라졌으며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 2년에 걸친 공성전/포위전에서 카르타고는 매우 격렬히 저항 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활의 시위로 쓰게 했다고도 하는데 판타지물등에서 좋은 소재로 쓰일수도 있을 듯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