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os,BC 431~404)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후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칩입을 우려해 BC 478년부터 델로스 동맹을 맺는다. 이때 스파르타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고 있었다.
페르시아를 그리스지역에서 몰아낸 이후 아테네는 동지중해의 강자로서 델로스 동맹을 이끌었다. 또한 이 동맹을 이용해 패권을 확장해 나갔으며 이런 행위들은 점차 스파르타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스파르타는 이에 반발하며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고 전쟁을 벌인다.
간단하게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패권다툼이라고 정의 될 수 있다.
아테네
해군 중심 || 민주정치
- 민주정치 :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치를 운용한다.
델로스 동맹(Delos)
- 아테네를 중심으로 에게 해 일대의 여러 나라들과 맺은 해상 동맹. 델로스 섬에 본부를 둠.
스파르타
육군 중심 || 과두정치
- 과두정치 : 적은 수의 우두머리가 국가의 최고 기관을 조직하여 행하는 독재적인 정치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os)
-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군사 동맹.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외의 도시들이 참여.
BC 460~446 아테네와 코린트의 분쟁 -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도 함.
스파르타가 코린트를 돕기도 함. 30년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
BC 431~421 아르키다모스(Archidamos) 전쟁 - 아르키다모스 2세가 아테네를 침공
BC 421~415 휴전기 - 니키아스 평화조약
BC 415~404 아테네가 시칠리아 내전에 원정군을 보내면서 큰전쟁으로 확대
아테네가 전략적 요충에 위치한 코르키라(코린트의 식민지)와 동맹을 맺자 펠레폰네소스 동맹은 이를 비난하며 양보를 요구했으나 아테네는 이에 대한 양보를 거부한다.
실질적인 전쟁은 전쟁에 반대했던 아르키다모스 2세가 어쩔 수 없이 동맹군을 이끌고 아티카를 침공하면서 시작된다.
아테네는 주로 도시(성곽)을 중심으로 한 방어와 함께 해군으로 적의 해안과 병력을 괴롭혔다. 아테네는 전염병으로 힘이 약화되긴했으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격퇴했다.
10여년간의 전쟁은 서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으며 전쟁에 지친 양동맹은 조약을 맺는다.
그 6년 후 전쟁은 재개 되었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로부터 해군을 지원받아 아테네 해군에 대항했고 전통적으로 아테네보다 강력한 중보병으로 아테네를 공략한다.
결국 아이고스포타미 전투(Battle of Aegospotami)를 끝으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나게 된다.
한동안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패자로서 자리잡는다.
* BC 5세기 경의 역사가인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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