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5.

체첸 분쟁

러시아-체첸 분쟁

체첸 전쟁,체첸 사태, 체체니아 분쟁,일부에서는 체첸 내전으로도 불리운다.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으로 출범하는 시기.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체첸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해 러시아 연방이 개입하면서 벌어진 사건. 체첸이 분리 독립하는 것이 여타 소수민족ㅡ러시아는 12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ㅡ의 분리 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카프카스 지역과 카스피 해 유역의 석유등의 자원확보가 더 큰 이유라고도 한다.

* 체첸족과 잉구슈족은 모두 이슬람교도이며, 체첸으로는 러시아의 석유 파이프가 지난다.

체첸은 자원뿐 아니라 지역적인 요충지이며 정교회중심의 러시아로서는 이슬람교의 저지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91년 11월  러시아 남서부 카프카스 지방에 위치해 있는 체체니아와 잉구셰티아(체첸-잉구시)에서 두다예프(구소련 공군 장군 출신)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두다예프는 이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

 이에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연방의 붕괴와 이슬람 원리주의의 파급을 우려해 체첸에 군대를 파견한다. 하지만 의회의 반대로 인해 3일만에 군대를 철수시킨다.

 

1992년 6월 러시아 최고회의가 잉구셰티아를 러시아 쪽에 끌어들이기 위해 잉구셰티아 공화국 수립을 선언. 체체니아와 잉구셰티아는 2개의 공화국으로 분할.

 

1994년 7월 친러정권을 위한 반두다예프세력이 집결해 잠정평의회를 구성

8월부터 무장 투쟁을 선언해 10월과 11월에는 수도 그로즈니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러시아는 공개적인 지원이나 대대적인 원조는 피한채 간접적인 지원을 했으며 직접적인 무력 개입은 회피했었다.

 

제 1차 체첸 전쟁, 1994~1997

1994년 12월 잠정평의회의 요청으로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공하면서 전면전에 돌입한다.

1995년 5월 수도 그로즈니를 제압.

 장비와 화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러시아군이었으나 그로즈니 함락에는 한 달 정도가 걸렸다. 기갑부대를 시가지에 전진시켰다가 RPG 집중사격 전술과 저격수들에 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수도를 점령단한 후에도 체첸 병사들은 산악지역으로 숨어들어 게릴자전을 펼치며 항전을 계속한다.

1996년 4월 두다예프 암살.

1996년 5월 양측을 합쳐 4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전쟁이 장기화 되자 그에 대한 부담과 여론 악화로 양측은 협상에 나서 정전 합의를 이뤄냄.

1996년 8월 안보회의 서기 레베드가 체첸문제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아 여러 차례 협상 끝에 평화협정을 체결. 모스크바에서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의견을 보였다. 얼마후 레베드가 안보회의 서기직에서 해임된다.

1997년 5월 양측 정상은 신 평화조약을 체결.

 

1998년 4월 샤밀 바샤예프 체첸 반군 사령관. 회교원리주의 기반 다게스탄 반군과 연합. 다게스탄에 침입해 '체첸-다게스탄 공화국'의 건설을 공포. 러시아내에 회교 국가를 세우려는 의도.

 

제 2차 체첸 전쟁, 1999~2000(또는 1999~ 진행중으로 보기도함)

1999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5차례나 연이은 폭발사고 발생.

 러시아는 체첸측의 테러로 결론짓고 체첸국경의 푸틴 총리(대통령 대행)의 명령에 따라 반군 거점지역에 공중폭격을 감행
2000년 2월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로즈니를 점령. 단계적 철군 발표.

- 기화폭탄을 먼저 사용한 후 군이 들어갔다고 함. 반군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

2001년 8월 철군은 이루어지지 않음. 체첸반군이 러시아 헬리콥터 격추. 118명 사망.

2002년 9월 러시아. 체첸에 영구히 병력을 주둔할 것을 발표

2002년 10월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2009년 4월 16일 10년간 체첸공화국에서 진행된 반테러 작전을 종결

*  러시아는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벌이자 이에 맞춰 '카프카즈지역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조국을 방어'한다는 논리로 체첸전을 묘사했다.

 

2009년 6월 잉구세티야 대통령 테러로 중상, 다게스탄 공화국 내무장관이 암살.

2009년 10월 23일 그로즈니 카디로프 대통령(친러시아)에 대한 자살 폭탄 미수 사건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태

2002년 10월 23일 모스크바 시내의 `돔 꿀뜨르이(문화의 집)' 극장에서 벌어진 인질극
 시내 극장에서 아르비 바라예프(반군 지도자)가 사흘간 700여명의 극장 관객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사건. 인질극에 참여한 반군 여성들은 독립전쟁 희생자들의 부인들로 알려졌다(이때문에 희생된 반군의 부인으로 이루어진 검은 미망인이라는 조직이 있다고도 함). 전쟁 중단과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임산부,어린이등 200여명을 풀어준 후 인질극을 이어갔으나 러시아는 특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진압했다.

정체불명의 마취 가스를 이용한 구출 작전으로 반군 20명과 민간인을 포함해 140~170명이나 사망하면서 과잉진압의 여론이 자국 및 세계에서 쏟아졌다.

 

기타 체첸관련 테러사건(위키에서 발췌)

마스하도프 사망으로 1996년 조하르 두다예프,2004년 2월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임시대통령, 2004년 5월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 등 역대 체첸 지도자 4명이 모두 살해

2002년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의 정부 청사 폭파 사건

2003년

체첸 공화국 북서부 행정 청사 폭파 사건

모스크바 야외 콘서트장 폭파 사건

2004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파 사건
그로즈니 독일 전승 기념식장을 폭파 사건(카디로프 대통령 사망)
인구시 공화국 내무성 등을 습격 사건
모스크바발 여객기 동시 폭파 사건
모스크바 지하철역 부근 폭파 사건
북쪽 오세치아 공화국 베스란 학교 점거 사건

2005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수도 날치크 동시 습격 사건

 

* 체첸 반군은 관련 사건 직후 범행에 대해 성명을 내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하고 세계의 이목이 사그라들 때 범행을 인정하는 성명을 냈다고 함.
이슬람 원리주의 과격파 세력과의 연계를 의심하기도 하는데 최근 다시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 반군에 체첸 원리주의자도 합류한다는 이야기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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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은 소련으로부터 차별 대우와 박해를 받았다. 주민들은 반 러시아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는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편입되기전인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도 러시아의 팽창에 대항해 전쟁을 했었다.

 

체첸(=체체니아,Chechenia)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지역에 위치 수도는 그로즈니
인구 130만 명의 작은 나라로 러시아의 3대 유전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이란과 터키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해온 전략-지리적 요충지.

이슬람교를 주로 믿으며 소수가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
체첸족은 주로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며 잉구슈족과 매우 유사한 언어를 쓴다.

1859년 러시아에 병합.

- 20세기 초 민족말살정책으로 많은 체첸인들이 중동의 이슬람국가들로 강제이주

1920년 11월 체첸 자치주 설립
1934년 체첸 자치주와 잉구슈 자치주가 합쳐져 체첸잉구슈 자치주가 됨.
1936년 체첸잉구슈(=체체노잉구셰티야)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44년 독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체첸족과 잉구슈족이 중앙 아시아로 쫓겨나면서 자치공화국이 해체.
1957년 흐루시초프 시절 복권조치로 유배자들이 돌아오게 됐으며 자치공화국도 재설립.

2009년 현재 대통령은 람잔 카디로프이며 친 러시아 인물이다.

 

이치케리아 체첸 공화국

1991년 독립 선언 이후의 '인정 되지 못한'국가.

체첸 반군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반 러시아이므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지 않는다.

이슬람교도로 정통 체첸임을 내세운다.

러시아에 적대적이나 친러정책을 펴는 체첸 공화국과 대립하기도 한다.

 

잉구셰티야(Ingushetia)
러시아 연방 남서부에 있는 공화국.
남쪽으로 그루지야, 동쪽으로 체첸, 서쪽과 북쪽으로는 세베르나야오세티야와 접해 있다.
수도는 나즈란 시이.
1810년경 잉구슈족이 러시아인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 여타 민족과는 달리 러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음.
1924년 잉구셰티야 자치주가 설립.
1934년 체첸 자치주와 합병.
1936년 체첸잉구슈 자치공화국이 설립
1944년 2차 세계대전중 해체. 주민들은 독일에 협력한 죄로 기소되어 소련의 아시아 지역으로 추방.
1957년 공화국이 재수립. 추방자들도 귀환을 허가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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