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1.

장미 전쟁

장미 전쟁 (薔薇戰爭, Wars of the Roses,1455~1485)
 랭커스터(Lancaster) 가문(붉은 장미 문장)과 요크(York) 가문(하얀 장미 문장)사이의 왕위 쟁탈전.
 두 가문의 문장이 장미 였기 떄문에 붙은 이름이다. 양쪽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아들들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왕위를 주장.
 
1399년 랭커스터 가문이 왕위를 차지
  랭커스터왕조는 헨리 4세가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했었으며 이로 인해
  헨리 6세 때 요크공 리처드가 랭커스터왕조 이상으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1422년 헨리 5세가 죽은 뒤 헨리 6세가 계승.
 헨리 6세는 학구적인 왕으로 종교의식과 교육기관 설립(!440~1441, 이튼 고등학교,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 관심을 쏟았고 정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신하들에게 맡겼다.
내정은 문란해졌고 지역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다.
1445년 프랑스 왕비의 조카인 앙주의 마거릿(또는 마가렛트)과 결혼
하지만 프랑스 내의 영국 소유지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그 입지마저도 위태로워진다.
1449년 서머싯 공작 랭커스터의 에드먼드 보퍼트와 요크 공작 리처드가 권력 다툼을 벌인다.
1453년 헨리 6세가 정신이상 중세를 보이자 귀족 동맹은 리처드를 섭정으로 세운다.
1455년 건강을 회복한 헨리 6세가 마거릿 일파의 권위를 재확립. 마거릿은 리처드를 추방한다.

추방 당한 리처드가 다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진다.
1455년 제1차 세인트올번스 전투(5. 22)에서 요크 가문이 승리.
  4년간 휴전이 이루어진다.
1459년 내전이 다시 시작.
  요크 가문은 블로어히스(9. 23)에서 승리했으나 러드퍼드 다리(10. 12)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 이후 흩어지게 된다.
1460년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프랑스에서 요크파 군대를 모아 돌아온 후 노샘프턴(7. 10)에서 랭커스터 군을 상대로 승리.
 헨리 6세를 사로잡아 그가 죽은 후 아들인 에드워드 대신 요크를 후계자로 하는 것으로 합의 한다.
 랭커스터 가문은 영국 북부에서 병력을 모아 웨이크필드(12월)에서 요크군을 기습해 리처드를 살해.
1461년 제2차 세인트올번스 전투(2. 17)에서 워릭의 요크군을 격파해 잡혀있던 헨리를 구출.
하지만 리처드의 아들 에드워드가 모티머스 크로스 전투(2. 2)에서 랭커스터군을 무찌르고 런던 탈환을 위해 진군해 랭카스터,마거릿보다 먼저 도착한다.
3월 4일 젊은 요크 공작은 웨스트민스터에서 국왕 에드워드 4세로 선포.
에드워드는 워릭과 마거릿을 추격해 타우턴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다. 헨리와 마거릿, 그의 아들은 스코틀랜드로 도망.


1469년 요크 가문내 워릭과 에드워드 4세의 분쟁으로 내전이 다시 시작.
  워릭과 에드워드의 동생 클래런스 공작 조지가 북부에서 반란을 선동해 에지코트에서 에드워드를 포로로 잡기도했다.
1470년 에드워드가 다시 통치력을 회복하자 워릭과 클래런스는 프랑스로 도망.
  루이 11세와 적이었던 앙주의 마거릿과 손을 잡는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에드워드를 폐위하고 헨리 6세를 왕으로 복위시킨다.
  에드워드는 추종자들과 함께 네덜란드로 도망
1471년 부르고뉴인의 도움을 받은 에드워드는 영국으로 돌아와 바넛 전투등에서 워릭을 패퇴시킨다.
  마거릿은 웨이머스에 상륙했으나 워릭의 패퇴소식을 듣고 웨일스의 안전지대로 도망가려고 했으나 투크스베리전투에서 패배 그녀의 군대는 전멸했으며 아들도 잃게된다.
  얼마 되지 않아 헨리 6세는 런던 탑에서 살해되었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죽음.
 에드워드 4세는 1남 1녀가 있었으며 어린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고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글로스터공이 섭정한다.
하지만 글로스터는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서자라고 선언하며 폐위시키고 자신이 리처드 3세로 왕위에 오른다.
배신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 요크 가문사람들은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에게 희망을 걸게 된다.
프랑스 루이 11세와 요크파 망명자들의 지원을 받은 헨리 튜더는 보즈워스 평원 전투(8.22)에서 리처드를 죽이고 전쟁을 끝낸다.
헨리 튜더는 헨리7세로 왕위에 오른다.

 

장미 전쟁은 끝나고 강력한 튜더 왕조가 열리게 된다.
왕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이지만 많은 귀족과 기사의 세력 싸움이 합쳐져 일어난것으로 본다.
본질적으로 귀족전쟁으로 보기도 한다.
귀족들은 백년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들로 이루어진 호위대를 거느렸고 약화된 왕권 사이에서 권력을 남용했다.
귀족과 기사 세력이 약화되고 왕권이 강화되어 영국은 절대주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486년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의 왕위계승권 주장을 하나로 만든다.
1487년 요크파의 반란을 제압했다. 이때를 장미전쟁의 끝으로 보기도 한다.

 

* 내란 당시에는 '흰색 장미'의 요크가 문장만 있었다고한다. 후에 랭커스터가문이 붉은 장미 문장을 쓰자 '장미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함.
튜더로즈(Tudor Rose) 문양이 있다. 붉은 색과 하얀 색 장미가 함께 들어있는 장미 문양으로 랭커스터와 요크의 문장이 합쳐진 형태.
** 축구 EPL(영국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랭커셔주,붉은 유니폼)와 리즈유나이티드(요크셔주,하얀 유니폼)간의 경기를 일컫는 말로도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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