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전국시대(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BC 403~221)
  BC 403(또는 475)년부터 진나라가 통일 할 때 까지의 시기. 이 시기를 다룬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서 따와 전국시대라 불린다.

 춘추 시대를 거치며 정립된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툰 시기.

 춘추 시대의 작은 소국들은 서로 정벌하며 몇개의 나라로 정립되었다.
 초기에는 위나라가 패권을 그뒤 제나라가 패권을 가져갔으나 연과 진이 강성해지며 7개국이 패권을 다투는 형태로 발전.
 7개국은 전국칠웅이라 불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진나라가 모든 국가를 제압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수립하게 된다.
 이 시기 정치,군사가 분리되고 군주에 의해서 책임자가 임명되었고 봉건제에서 군현제로 정착된다.
 정치,군사적 혼란 가운데에도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웠고. 천문,역법,수리,토목,건축,공예에서도 전례 없는 발전을 보였다.
 춘추시대부터 발전한 철기의 여파가 큰 파급 효과를 줬다고 한다.

 

 BC 403년 진(晉)나라의 세족(世族) 위(魏),한(韓),조(趙)씨가 진나라의 영토를 나눠 각각의 국가를 세움.
               주왕실에 공인을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이때 완전히 봉건제도가 붕괴되었고 주왕조 권위가 떨어진 것으로 본다.
               각 국은 자신이 왕임을 자임하였다.
 BC 340년 전국 초기부터 강성했던 위나라가 진의 공격으로 도읍을 옮김.
 BC 318년 초나라가 날로 강대해지는 진나라를 견제하고자 진나라 동쪽의 위,조,한,연,제등과 동맹하는 합종책(合從策,또는 합종설)을 펴자
               이에 진나라는 각국과 따로따로 동맹을 맺는 연횡책(連橫策,또는 연횡설)로 맞대응해 초나라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고 동맹과 침략을 통해 우위를 유지한다.
 BC 260년 장평(長平) 싸움으로 조나라에 대해 승리한 뒤 초,조,한,위 연합 역시 물쳤다.
 BC 223년 진이 초나라를 꺾음.
 BC 221년 진나라 전국을 통일.

 

춘추시대에는 나라의 제사를 끊으면 나라의 조상으로부터 저주받는다고 하는 생각때문에 나라를 점령해도 완전하게 멸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멸망해도 부흥하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한번 전쟁에 지는 일은 나라의 멸망에 직접 연결되었다고 한다.

 

합종연횡(合從連衡) 

소진의 합종설과 장의의 연횡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전국 칠웅(戰國七雄) - 중국 전국 시대의 일곱 제후
 진(秦),초(楚),연(燕)의 3개 강대국과 한(韓),위(魏),조(趙),제(齊:田齊)의 4개 신흥국으로 구성되었다.
 - 한,위,조는 진(晉)나라의 3가문이 주(周)나라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3등분 되어 세워진 나라
 - 제 나라 역시 그동안 제위에 올랐던 강씨가 아닌 전씨가 기득권을 잡았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 사상가들의 교단과 저작물의 총칭.

- 인물 : 공자(孔子), 관자(管子), 노자(老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윤문자(尹文子), 손자(孫子), 오자(吳子), 귀곡자(鬼谷子),순자(荀子)
- 학파 :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음양가(陰陽家)

2009. 11. 7.

춘추시대

춘추시대(春秋時代,BC 770~403)

 짧게는 춘추라고도 한다. 공자가 쓴 역사책 '춘추'가 이 시대의 일을 서술한데서 붙여진 이름.

 중국 주나라가 견융족의 침입으로 도읍을 동쪽으로 옮긴 때를 시작으로 약 360년간 전란의 시대를 말한다.

 

  주나라가 왕실을 동쪽으로 옮겨가 세력이 약해지자 중원의 제후국들은 느슨해진 영향력 아래에서 점차 힘을 확대했다.
자신의 세력권안의 읍이나 국가를 복속시켜 나간 것으로 주나라 말기 800개 가까이 되던 나라들은 춘추시대에 수십개로 줄어들었다.
각 국은 주변국을 정복해 나가며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발전했다.
이 정복전에서 군주는 토지를 장수나 관리에 영지로 주지 않고 현으로 이름 붙여 왕이 직접 다스리는 방식을 택한다.
(초기에 진이나 초나라가 시작했다고도 하며 봉건제도가 붕괴되어 군현제로 들어가는 단계를 보여준다.)

각 지역의 맹주들은 허약해지기는 했으나 명분상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주나라에 이름을 높이며 자신의 지역에서는 권력을 확대했다. 
강력한 제후들은 회맹 외교를 펼치기도 했는데 제후 가운데 가장 강한자가 패자(황제로부터 일정한 지역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은 제후의 우두머리)로서 회맹을 주최했다.
회맹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주 왕실을 존중하고 숭배한다는 명목이었으나 실질적으로 중원을 통제했으며 이런 회맹외교로 상호간 세력간의 균형을 도모했다.
그 중 춘추오패(제,진,초,오,월나라)가 세력이 가장 컸다.
이런 모임은 힘의 균형뿐아니라 남쪽의 강력한 세력인 초(楚)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BC 658~657 - 초가 정(鄭)나라를 침입.  제나라 환공(桓公)이 이듬해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물리침
BC 651 - 제나라 환공(桓公)의 규구(葵邱)의 회-(환공이 죽고 제나라는 내분으로 약화되었고 진나라가 강해짐)    
BC 633 - 초가 북진. 진나라가 성복에서 초를 격파.
BC 632 - 진나라 문공(文公)의 천토(踐土)의 회-(문공이 죽고 진나라역시 내분으로 약화)
BC 587 - 초나라가 진(陳)과 함께 송나라를 침공을 시작해 여러나라를 정벌해 북방의 패자가 됨.
             초나라가 들어오면서 패자의 성격도 달라져 주나라 왕실은 무시되기 시작한다.
BC 506 - 오나라 합려(閤閭)가 초의 도읍인 영을 함락.
BC 482 - 오나라 부차(夫差)가 맹주의 지위에 오름.
BC 473 - 오나라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멸망. - 월은 BC 334년 초나라에 멸망.
BC 403 - 진(晋)이 조,위,한의 3국으로 분열되어 동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음.
             춘추와 전국시대의 경계로 본다.
(BC 453년 지백(知伯)을 멸망시키고 실질적인 3국의 분립이 성공시기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 주나라가 도읍을 옮긴 일에대한 서술에서 '동천'이라고도 한다.
**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
*** 春秋五覇 -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 (진 목공, 송 양공, 오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춘추(春秋)
공자가 쓴 편년체(=기년체.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기술 방법) 역사서.
유교 5경의 하나. BC 722~479년까지 모국인 노(魯)나라의 12제후 시기의 주요사건들을 기록한 것.
주석서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공양전, 公羊傳','곡량전, 穀梁傳'이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합려를 섬기던 손무(孫武)가 지은 병법서. 아직도 병법서 최고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당시 병가 사상을 볼 수 있고 합려와의 일화도 들어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성어로 오나라 부차와 월나라 구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BC 496 합려가 월나라 원정중 실패하고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죽자 그 아들 부차가 유언에 따라 복수를 위해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했다.

 부차는 월나라에 복수를 하고 구천을 사로잡아 월왕의 아내를 첩으로 삼고 구천과 신하 범려등을 비굴한 행색으로 만들었다. 구천은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치욕을 감수했고 결국 신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차는 그를 월나라로 돌아오냈다.

 

 구천은 돌아온 날부터치욕을 되갚아줄 날만을 기다린다.
그는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회계지치)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북진에 정신이 쏠린 틈을 노려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켰고 부차는 자살하게 해 치욕을 되갚았다.